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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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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의 모든 이야기 2020. 9. 23.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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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걸 정말 싫어합니다.
내 마음이 다치는게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겠지요?
예전의 생활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나 다름없습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괜히 감사를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평안하게 지낸 것도 몇년 지나니까 그 감동과 감사가 무뎌진 건 사실입니다.
예전의 삶이란 젊은 날의 나의 삶입니다.
누구나 일치하지는 당연히 않지요.
저는 결혼하면서 시부모님과 좁은 집에서 잘 살았습니다.


직장도 계속 다녔고, 아이도 순풍순풍 잘 낳았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말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모와의 사이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많이 나빠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이해는 갑니다. 연로한 나이에 얼마나 고달프셨겠습니까?
그러면 저는 어땠을까요?
더이상 말하면 울분이 쳐 올라오기때문에 여기서 그만하고, 매우 심각하게 힘들었습니다.


결벽하신 시모!
혹시 어떤 건지 짐작이라도 하실까요?
19년을 함께 살며 서로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지옥같이 끔찍한 일도 같이 있었습니다.
정말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가 자유를 찾아서 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참, 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다시 본론으로 가서, 어제 저는 친한 동생들과 함께 운동도 하고,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습니다.
서로 오랫동안 사랑해온 사이라서 대화도 엄청 활기찼습니다.


그러나 얘기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 도중인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 얘길 끼어들면 전에 말하고 있던 사람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네명이었는데, 세명이 모두다 새로 시작한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말하고 있던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과연 어떤 현상일까요?
노화의 일종일까요?
제가 젤 위고 셋은 몇살씩 층이 있지만 중년에 속했습니다.


모두 다 누군가를 소외시킨다는걸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 상관없는 것일까요?
다들 그러려니 하니까 그냥 넘기면 편할 것 같긴 합니다.
저는 그래서 내가 말을 줄이고,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경청자가 되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도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저도 수다우먼이니까요.
그래도 제가 무시당하는 것이 너무 싫고, 다른 사람이 그런 상황인 걸 보는 것도 너무 싫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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